지금, 이 시대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2015년 6월호 작은것이 아름답다<지구 소리> 특집_사운드 오브 서울
소리란 무엇인가? 생명의 본질은 떨림이다. 잉태된 생명에게 처음으로 열리는 감각은 청각이다. 청각기관은 외부와 내부세계를 연결하는 감각기관이다. 양수의 진동을 통해 태아는 외부세계와 접촉하며, 이 때문에 음악이나 태담으로 태아와 소통하며 태교를 한다. 반대로 태아가 있는 내부세계로 접근하기 위해서도 소리가 필요하다. 태아의 건강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주로 사용하는 초음파 검사가 바로 그것이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를 소리로 진단하는 것이다. 태어난 아기는 힘찬 울음을 터트리며 외부세계와 첫 소통을 시작하고, 살아있는 동안 많은 소리를 만들어낸다. 살아 움직이기에 소리가 나는 것이다. 말을 배우고,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 부르며 즐거움을 느낀다. 사람들은 사는 동안 자신만의 목소리로 세상과 소통한다. 그리고 죽음에 이르러서야 호흡을 멈추고 움직임을 멈추고 소리도 멈춘다. 이것이 삶이며 소리의 일생인 것이다.
‘사운드오브서울’은 생명의 본질인 ‘소리’에 집중하는 활동이다. 지금 이 시대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행동을 통해 우리 내부의 모습을 바라보고 일상의 이면을 다시 보게 하는 것이다. 도시의 모습을 눈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소리로 그리기 위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서울의 소리를 채집해 소리지도를 만들었다.
사운드오브서울은 소리가 사람과 공간 사이에서 어떤 관계성을 가지는지 탐구하고 연구한다. 여기서 말하는 공간은 건축, 지역, 지형, 도시, 환경, 생태를 포함한다. 환경으로부터 소외된 소리를 다시 발견해 새롭게 환경과 공간을 잇고, 물리적 관점은 물론 문화적 관점을 함께 고려해 사람과 생태환경이 온전히 화합하는 ‘도시 소리 생태’를 디자인한다. 동시대 소리에 귀 기울이고, 미래 세대에게 지금 이곳의 소리를 오롯이 전달하는 것이 사운드오브서울의 목표이다.
소리채집 장소로 선정한 곳은 종로구, 중구, 동대문구, 영등포구, 구로구 일부 지역이다. 역사적 시간을 기준으로 삼고 사대문 안의 공간을 중심으로 소리를 채집했다. 조선건국부터 개화기, 근대, 한국전쟁, 현대화가 되어가는 시간 축에서 변화하는 장소들의 특성을 고려했다. 종로는 한양이 조선왕조의 도읍지로 정하며 만들어진 행정구역으로, 긴 시간의 역사가 담겨 있고 중구에는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시기 건축물이 많이 남아있다. 철공소가 많은 영등포구는 공장 밀집 지역에서 소리와 환경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보기 위해 채집 대상 지역으로 선정했다.
산에 가면 산의 소리가 있다. 동물의 울음소리와 바람소리, 물 흐르는 소리가 있다. ‘백색잡음’이라는,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소리가 있는데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백색잡음의 대표 예이다. 그러나 산에는 사람이 없고 도시에는 사람이 있다. 사운드오브서울이 도시 소리를 채집하는 이유는 사람 때문이다. 사람을 중심에 두고 소리와 환경, 공간을 연결해 생각해보는 것이다.
서울의 소리 풍경을 들어보자. 시청역에서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소리를 통해 우리의 내부로 들어가 보자. 2014년 11월 7일 오전 9시 3분에 시청역 지하도에서 채집한 소리다. 직장인들이 출근에 가장 많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인 지하철. 출근길 소리를 채집해 들어보니 사람들 목소리가 빠져 있었다. 묵묵히 걷는 것에만 집중하며 계단을 걸어 올라간다. 발걸음소리가 무겁고 둔탁했다. 마치 전투에 나가는 병사처럼. 직장이라는 전쟁터에 나가 경쟁하며 살아야 하는 우리 모습을 보여주는 소리 풍경이었다. 퇴근시간 소리 풍경도 담아봤다. 같은 장소에서 2014년 11월 26일 오후 6시 49분에 채집했다. 퇴근하는 소리에서 귀에 들어오는 첫 소리는 목소리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상기되어 있었다. 전화하고 웃고 대화를 나누며 움직이는 발걸음소리는 경쾌하고 가벼웠다. 퇴근 뒤 일어날 여러 일들에 기대감을 품고 있는 소리 풍경이었다. 퇴근시간은 직장인에게 해방의 시간이다. 직장인 모두가 기다리는 시간이니, 퇴근길 소리 풍경은 즐거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엔 동대문신발도매 시장으로 가보자. 이곳의 소리 풍경은 어떨까? 속담처럼 빈 수레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양옆으로 신발들이 늘어져 있는 골목에서 새소리 같은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손수레로 짐을 옮기는 배달 일을 하는 분의 휘파람 소리였다. 좁은 상가 골목을 지나가기 위해 알림 소리로 사용하는 것이다. 자동차에서도 날카로운 경적소리 대신, 이런 휘파람 소리가 나면 어떨까 상상해본다. 그렇게 되면 운전하다 발생하는 분쟁들도 줄어들게 되지 않을까.
다음은 제기동으로 가보자. 경동시장에 가려면 제기역을 이용하면 편리하다.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노년층이 많고, 대부분 사람들이 시장용 손수레를 끌고 다녔다. 왜 손수레들을 끌고 다닐가 궁금해 하며 손수레 소리를 따라 경동시장 입구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상인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과일, 정육, 건어물, 채소, 생선에 이르기까지 온갖 먹거리가 넘쳐났다. 살 것이 많으니 손수레가 필요하고, 그래서 손수레 소리가 많이 들려왔던 것이다.
경동시장에서 청량리 방향으로 내려가면 청량리종합청과물시장이 나온다. 이곳 소리 풍경에는 리듬이 있다. 상인들이 목소리로 리듬을 만들어 사람들을 부르기 때문이다. 도소매 가게가 밀집되어 있다 보니 경쟁상대가 많은데, 과일은 싱싱할 때 팔아야 제 값을 받을 수 있기에 상인들은 저마다 개성을 살린 목소리 톤과 리듬으로 사람들에게 말을 건다. 서로 목소리가 겹치면 손해가 되니 자연스레 각자 개성에 맞게 목소리를 만들어 쓰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음역대의 소리들이 들리는 풍경을, ‘경동시장의 합창’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곳 경동시장의 합창 소리로 세상을 배운다. 자기만의 목소리와 리듬을 가지고 세계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사운드오브서울 활동은 ‘듣기 문화운동’의 영역에 있다. 수동적으로 주어진 소리를 듣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듣기, 주체적으로 듣기를 통해 우리 내부의 모습을 바라보며 일상에 대한 생각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또한 일상에서 채집된 소리를 공유함으로써 소리를 통해 세상을 느끼고 소통할 수 있는 ‘소리 기록 보관소’의 역할도 할 계획이다. 듣기 문화운동을 확장시켜 도시와 도시를, 국가와 국가를, 세계와 우주를 소리로 잇고 소리를 통해 생태와 사람을 조화롭게 어우러지도록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사운드오브서울 활동을 계속 해 나갈 생각이다.
출처: 작은것이 아름답다